(위의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여행일: 2024년 12월 21일
이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오전 6시 반 기차를 타고 코르도바로 향한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코르도바는 당일치기도 충분히 가능한 곳이라 이렇게 서둘러 아침 일찍 떠날 필요는 없었을 것 같다.) 보통 스페인 여행에서 코르도바를 잘 포함하지 않지만, 나는 코르도바에 있는 메스키타라는 유적을 꼭 한번 보고 싶어서 코르도바를 일정에 넣게 되었다.
이렇게 들뜬 마음으로 코르도바 기차역에 도착하니 오전 8시쯤이었다. 코르도바는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만큼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먼저 숙소로 향하였다. 오후에는 코르도바 투어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는 투어 루트에 포함되지 않은 코르도바 구시가지의 몇 곳을 방문하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코르도바의 로마교였다.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고대 로마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코르도바가 로마 제국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이후 코르도바는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 시기에는 로마교가 알카사르 요새와 메스키타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나는 다리를 감상하고, 위를 걸으며 따스한 햇볕을 만끽했다.
그렇게 투어 시간인 오전 11시 반이 되었다. 이곳에서는 한국어 투어를 제공하지 않아, 나는 Viator를 통해 영어 투어를 예약해 두었다. 약 20명 정도로 구성된 그룹 투어였으며, 진행 순서는 코르도바 알카사르 → 유대인 지구 → 메스키타 순이었다.
코르도바 알카사르는 상대적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과거 무어인들의 궁전이 있던 자리로, 이후 카톨릭 군주들은 이를 요새로 개조해 사용했다. 특히, 이곳은 스페인의 역사적 순간 중 하나인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콜럼버스와 만났던 장소로 유명하다.
코르도바 알카사르는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로마 시대의 모자이크가 전시되어 있다. 내부에는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정원에는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이 콜럼버스를 만난 것을 기념하는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헤네랄리페에 비하면 초라한 정원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잘 꾸며져 있다.
알카사르 관광을 마친 후에는 코르도바 유대인 지구(Judería de Córdoba)로 향했다. 이곳은 코르도바 구시가지의 한 부분으로, 중세 시대 유대인 공동체가 거주했던 지역이다. 좁은 골목과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통적인 집들, 그리고 아름다운 안뜰이 이곳의 특징이다. 현재는 작은 소품 가게와 기념품 가게, 그리고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는 관광객들이 몰려 있어 꽤 복작거리며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다.
투어는 유대인 지구를 조금 둘러본 후, 이곳의 주요 명소 중 하나인 코르도바 시나고그로 향했다. 시나고그는 유대교 회당을 의미하며, 코르도바의 시나고그는 중세에 건축된 유일한 안달루시아 지역의 시나고그라고 한다. 그 당시 세계적인 도시였던 코르도바의 규모에 비해 상당히 작게 느껴졌다. 내부에서는 히브리어로 새겨진 섬세한 석조 장식과 스투코(석고) 조각을 감상할 수 있었다.
투어의 마지막은, 사실상 내가 코르도바를 방문한 가장 큰 이유였던 메스키타였다. 메스키타는 이슬람과 기독교 문화가 융합된 굉장히 독특한 역사를 가진 대성당이다. 원래 서고트족의 교회가 있던 자리에, 8세기 무렵 우마이야 왕조가 웅장한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우마이야 왕조 기간 동안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규모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후 레콩키스타 시기에 가톨릭 군주들에 의해 대성당으로 개조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메스키타의 내부는 아래 사진처럼 아치형 기둥 숲으로 유명하다. 붉은색과 흰색이 교차된 말발굽 모양의 아치와 856개의 대리석 기둥이 만들어내는 조화는 정말 독특한 시각적 연출을 보여준다. 내부를 거닐다 보면 마치 세련된 유원지나 고급 백화점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 분위기가 이색적이다.
메스키타가 성당으로 바뀌던 당시, 메스키타의 독특한 아치 구조와 섬세한 장식은 이미 매우 뛰어난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를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보존하고, 그 위에 가톨릭적 요소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개조가 이루어졌다. 덕분에 오늘날에도 이 멋진 아치의 숲을 거닐며 두 문화가 융합되어 탄생한 독특한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치의 숲을 지나 중앙부로 가면 웅장한 고딕 양식의 대성당 합창단석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슬람풍 장식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갑자기 정교하게 조각된 가톨릭 합창단석과 제단이 등장하니, 마치 문화적인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비록 가톨릭적으로 변한 부분도 충분히 근사했지만, 역시 이슬람 장식과 끝없이 이어지는 아치의 숲이 훨씬 더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메스키타 관광을 마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점심을 건너뛴 채 계속 움직였더니 배가 너무 고파서 먼저 저녁을 해결한 후, 완전히 해가 떨어질 때까지 코르도바 구시가지를 산책했다. 해가 지자 코르도바 역사지구에 하나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군청색 하늘 아래 따스한 조명이 들어오면서 꽤나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특히, 조명이 비추는 로마교는 그 아래 어둑하게 흐르는 강과 대비를 이루며 더욱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후 나는 숙소로 돌아가 이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코르도바는 작은 도시로, 역사지구에 주요 볼거리가 집중되어 있어 당일치기 여행도 충분히 가능한 곳이다 보니 일정이 여유로워서 좋았다. 무엇보다 메스키타 대성당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근사해서, 정말 만족스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