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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여행일: 2024년 12월 20일
본격적인 그라나다를 구경한 날이다. 오후 2시쯤 예약해 놓은 알함브라 궁전 투어가 있어서 오전에는 그라나다의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구경하였다. 나는 가장 먼저 그라나다 대성당으로 향하였다.
그라나다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알카이세리아 거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좁은 골목에는 기념품 샵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거리의 건물 장식들을 살펴보니, 앞으로 보게 될 알함브라 궁전의 장식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많아 인상적이었다.
거리를 지나 도착한 그라나다 대성당은 꽤나 웅장했다. 이 성당은 르네상스 양식의 가톨릭 성당으로, 과거 이슬람 통치 시절 모스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고 한다. 외관은 웅장한 기둥과 섬세한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며, 유럽의 다른 성당들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라나다 대성당 내부는 스페인의 가톨릭 왕국 부흥을 상징하는 곳인 만큼 하얀 대리석과 황금빛 장식으로 눈부시게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중앙 제단의 웅장함과 섬세한 장식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구경하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과 장엄함은 생각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장소라고 느꼈다.
이후에는 바로 옆에 위치한 왕실 성당(Royal Chapel of Granada, Capilla Real)을 방문했다. 이 성당은 스페인의 가톨릭 군주인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의 명령으로 건축되었으며, 두 왕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설계된 장소이다. 내부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지만, 성당 내부에는 가톨릭 군주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입장료에 비해 볼거리가 많지 않아서, 역사에 큰 관심이 없다면 굳이 방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이후에는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뒤, 알함브라 궁전의 전경을 보기 위해 알바이신 지구에 위치한 니콜라스 전망대로 향하였다. 알바이신 지구에 도착하자 좁고 활기찬 거리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곳은 아랍 문화의 영향을 깊게 느낄 수 있는 장소로, 거리 양옆에는 중동풍의 찻집(테타리아), 향신료 가게, 그리고 아랍풍 장식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마침내 도착한 니콜라스 전망대에서는 알함브라 궁전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날씨도 쾌청해서 전망대에서 기분 좋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이곳은 특히 일몰 명소로 유명해 석양이 비추는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이 장관이라고 한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예약해 둔 알함브라 궁전 투어를 위해 미팅 장소였던 알함브라 궁전 매표소로 향했다. 알함브라 궁전은 그 명성에 걸맞게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나는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투어를 예약했는데, 주의할 점은 투어에 참여하기 전에 직접 입장권을 예매해야 하며, 특히 알함브라 궁전의 하이라이트인 나스르 궁전(Nasrid Palaces)의 입장 시간을 투어 시간에 맞춰 예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곳은 여권이 있어야만 입장이 가능하므로, 반드시 여권을 지참해야 한다.
알함브라 투어는 먼저, 헤네랄리페(Generalife)를 방문하였다. 헤네랄리페는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단지에 포함된 여름 별궁이자 정원으로, 나스르 왕조(Nasrid Dynasty) 시기의 이슬람 건축과 조경 예술을 대표하는 공간이다. 이름은 아랍어로 "높은 천국의 정원"을 의미하며, 궁전의 왕족이 더위와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휴식을 취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알함브라 궁전에는 많은 분수가 있는데, 이는 물이 생명력과 풍요를 상징하며 이슬람 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특히 헤네랄리페의 아세키아 정원에 위치한 수로 안뜰은 중앙 수로와 아치형 회랑으로 유명하며, 여름에는 녹음과 꽃으로 가득하지만 내가 방문한 겨울에는 녹음이 적었다.
이곳을 둘러보면 두 가지 유형의 분수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조용하고 은은한 물소리를 내는 무어인들의 분수로, 이는 사색과 평온함을 위해 설계되었으며, 물의 풍요와 순수함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이슬람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소리가 크고 요란한 서양식 분수로, 이는 이후 서양 문명에 의해 개조된 결과이다. 개인적으로는 은은한 분수가 정원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와 더욱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알함브라 건물 내부의 장식은 정말로 정교하고 섬세했다. 벽면에 새겨진 아랍어 장식과 복잡한 기하학적 무늬로 만들어진 창문은, 당시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무어인들의 뛰어난 문명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장식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어 더욱 인상적이다. 특히, 아랍어로 새겨진 문구들은 신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기하학적 무늬와 아라베스크 패턴은 무한성을 상징하며 신성함을 나타낸다. 건물 내부를 걷다 보면, 빛이 창문을 통해 비칠 때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그림자와 빛의 반사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러한 알함브라 궁전의 독창적인 빛과 공간 활용은 스페인의 건축가 가우디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헤네랄리페 관광을 마친 후 나스르 궁전에 입장하였다. 가장 먼저 마주한 곳은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유명한 멕수아르(Mexuar)이다. 멕수아르는 알함브라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 중 하나로, 원래 행정과 공적인 업무가 이루어지던 공간으로 사용된 곳이다. 멕수아르는 정교한 아라베스크 장식으로 가득하며, 특히 벽면과 천장은 세밀하게 조각된 석고 장식이 돋보인다. 또한, 중앙의 연못을 중심으로 한 대칭적인 설계는 이슬람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요소이다.
이곳의 연못은 쿠란(코란)에 묘사된 천국(파라다이스)을 재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멕수아르의 연못과 분수는 물의 고요한 흐름과 맑은 반영을 통해 천국의 평화와 풍요로움을 상징한다. 특히 중앙에 위치한 열쇠 모양의 분수는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의미하며, 멕수아르 궁전을 향하고 있어 그 상징성을 더욱 부각한다.
멕수아르를 지나면 마주하게 되는 곳은 사자의 안뜰(Court of the Lions)로, 나스르 왕조 시기에 건축된 이슬람 건축의 정수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 안뜰은 나스르 왕조의 통치자인 무하마드 5세가 지은 것으로, 왕족의 개인적인 공간이자 휴식처로 사용된 곳이다. 이곳의 이름이 사자의 안뜰인 이유는 중앙에 위치한 사자 분수(Fountain of Lions) 때문이다. 이 분수 역시 물이 조용히 흐르도록 설계되어 고요하고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앙 분수를 중심으로 안뜰의 사방에는 기둥과 회랑이 둘러싸고 있다. 기둥들은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형태가 불규칙한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기둥의 다리는 하나에서 세 개까지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어, 전형적인 대칭 구조의 기둥 설계와는 차별화된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자의 안뜰에서 이어진 왕의 전당(Hall of the Kings, Sala de los Reyes) 천장에는 금박 벽화가 있다. 이는 나스르 왕조 시대의 독특하고 중요한 예술 작품 중 하나로, 이슬람 예술과 문화의 일부로 여겨진다. 보통 이슬람 장식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인해 사람이나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데, 이곳은 종교적인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에 아래의 사진처럼 인물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사자의 안뜰에서 연결된 아벤세라헤스의 방(Hall of the Abencerrajes, Sala de los Abencerrajes)에서는 정말 독특하고 근사한 돔 천장을 볼 수 있었다. 이 천장은 무카르나스(Muqarnas)라 불리는 이슬람식 장식으로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석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석고로 이렇게 섬세하고 정교한 장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알함브라 궁전 투어는 알카사바의 성벽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마무리되었다. 석양이 비치는 알함브라 궁전의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성곽에서 바라본 석양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이는 과거 궁전의 왕족과 주민들이 마주했을 풍경이기 때문이다. 궁전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그라나다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그라나다의 구시가지는 폐장 시간까지 감상하였다.
알함브라 궁전 투어가 끝난 뒤에는 호텔로 돌아가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이후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알함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 니콜라스 전망대로 향했다. 그런데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알함브라 궁전 매표소 앞에 내리게 되었다. 결국 이곳에서 20~30분 정도 걸어서 니콜라스 전망대까지 가게 되었는데, 이는 오히려 뜻밖의 행운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외곽을 따라 내려가며 조명이 비친 궁전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본 궁전은 사진으로 남기기에도 훨씬 좋았다.
예전 여행에서 이스탄불에서는 투르크족에 의해 개조된 기독교 건축물의 흔적을 보았다면, 이번에는 그라나다에서 반대로 기독교 세력에 의해 개조된 무어인의 건축물을 보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콘스탄티노플의 함락과 레콩키스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으며, 이 두 사건이 중세의 끝과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라는 것이다. 양쪽에서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로 다가와 더욱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무어인들이 남긴 유산은 스페인에게 정말 귀중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의 건축과 문명 수준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특히 섬세하고 정교한 무어인들의 건축 양식과 장식을 직접 보며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알함브라 궁전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정말 근사하고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이렇게 그라나다에서의 관광은 깊은 여운과 함께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