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포스트에서 이어집니다.)
여행일: 2024년 12월 19일
이날은 세비야를 떠나 론다를 구경한 뒤 저녁에 그라나다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버스와 기차를 타며 긴 여정을 해야 하는 날이라 다소 긴장된 하루이기도 했다. 오전 9시에 예매해 둔 론다행 Damas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Plaza de Armas까지 걸어갔다. (버스표 예매 사이트: https://damas-sa.es/)
다행히 별다른 문제 없이 버스를 타고 론다에 도착하니 시각은 12시쯤이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짐을 보관할 수 있는 캐비닛이 마련되어 있어 배낭을 맡긴 후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론다를 자유롭게 둘러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역시 론다의 상징인 누에보 다리(Puente Nuevo)였다. 누에보 다리는 타호 협곡을 가로지르는 높이 약 98m의 웅장한 석조 다리로, 협곡 양쪽을 연결하며 론다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의 장엄한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론다는 해밍웨이와도 관련이 있는데, 그의 대표작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에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특히, 소설 속에서 사람들이 다리에서 협곡 아래로 떨어지는 비극적인 장면은 론다의 타호 협곡과 누에보 다리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누에보 다리 아래로는 타호 협곡의 깎아지른 절벽이 펼쳐져 있어, 다리의 높이가 상당히 높아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참고로, 다리 아래쪽에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수 있는 누에보 다리 박물관이 있지만, 전시 내용이 빈약해 특별히 흥미를 끌지 않으므로 굳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누에보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빠지면 론다 외곽을 따라 비에호 다리로 향할 수 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누에보 다리가 잘 보이는 Cuenca 전망대로 갈 수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며 바라본 론다 마을과 안달루시아의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겨울이라 녹음이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산맥과 언덕이 그려내는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눈길을 사로잡았다.
개인적으로 Cuenca 전망대에서 바라본 누에보 다리가 가장 근사하게 느껴졌다. 다리보다 살짝 낮은 위치에서 다리를 올려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론다의 협곡도 한눈에 잘 보였기 때문이다. 전망대에는 앉을 수 있는 벤치도 많이 마련되어 있어, 여유롭게 앉아 다리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이후에는 누에보 다리를 건너서 투우장으로 향했다. 그런데 투우장 앞에 있는 오징어게임의 동그라미들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인형... 스페인의 변방 론다에서까지 오징어게임2를 홍보하다니 정말 놀라울 뿐이다. 뭔가 이질적이긴 했지만, 오직 이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이질감이기에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 투우장에 들어가기 전에 근처에 있는 론다 전망대를 먼저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론다의 협곡과 외부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스페인 남부의 험준한 산악지대와 드넓게 펼쳐진 억덕 평야는 목가적인 정취와 함께 묘하게 시원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후에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론다 투우장을 둘러보았다. 이곳은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로, 현대 투우의 발상지로도 알려진 역사적인 장소다. 비록 투우 경기가 열리지 않아 휑한 모습이었지만, 관중석에 앉아 투우 경기가 열릴 때의 뜨겁게 달아오르는 분위기를 상상해볼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투우장 내부에 위치한 투우 박물관 덕분에 비를 피하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원래 투우장 관광을 마치고 다른 전망대를 더 볼 생각이었으나, 갑자기 비가 내리는 바람에 비를 피하기 위해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후 오후 5시 20분 기차를 타고 그라나다로 가기 위해서 론다 기차역으로 갔다. 기차역은 론다라는 작은 도시에 맞게 굉장히 작았다.
기차를 타고 1시간을 달려 Antequera-Santa Ana 역에 도착한 뒤 1시간을 기다려 그라나다 행 기차로 갈아탔다. 그라나다 기차역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오후 8시 30분이었다. 나는 그라나다 구시가지에 있는 숙소까지 걸어가 체크인을 마치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세비야에서 론다를 거쳐 그라나다까지 이동하며 긴장이 계속된 하루였지만, 모든 일정을 무사히 소화해 뿌듯함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