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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 전에 둘러 본 암스테르담 - 국립미술관 & 고흐 미술관

skypainter 2025. 6. 28.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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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 2025년 6월 1일

루트: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반 고흐 미술관

최근 들어 조금 바빠지면서 포스트가 뜸했다. 가장 큰 이유는 6월 2일부터 6일까지 마스트리흐트에서 열린 NetSci 2025 컨퍼런스에서 포스터 발표를 하게 되어, 그 준비로 정신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바쁜 일들이 많았지만,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포스트로 정리할 예정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번 컨퍼런스를 계기로 네덜란드를 방문하게 되었다는 점이고, 덕분에 암스테르담도 잠시 둘러볼 수 있었다. 나는 6월 1일 오전 10시쯤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고, 오후 8시 기차를 타고 마스트리흐트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중간에 생긴 여유 시간을 활용해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반 고흐 미술관을 방문하기로 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규모가 꽤 크기 때문에, Viator를 통해 투어를 신청했다. 미술관 관람은 해설해주는 사람이 있을 때 훨씬 기억에 오래 남고, 배울 수 있는 것도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 시내 풍경

 

암스테르담은 2012년 겨울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비가 내리고 날씨도 우중충해서, 솔직히 그다지 인상 깊지 않은 도시로 기억하고 있었다. 볼거리도 별로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찾은 여름의 암스테르담은 확실히 달랐다. 맑은 날씨에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지니,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가 한층 더 돋보였고, 풍경은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나는 근처 카페에서 간단히 아점을 해결한 뒤, 이 멋진 풍경을 좀 더 느끼고 싶어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투어 집합 시간은 오후 1시. 느긋하게 걸으며 풍경을 즐긴 것이 화근이었을까,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해져서 서둘러 미술관에 도착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것은, 네덜란드 황금기를 이끈 렘브란트를 전면에 내세운 전시 포스터. 이 미술관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렘브란트 - 야경

 

투어는 렘브란트의 작품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작품은 그의 대표작인 《야경(Night Watch)》이었다. 현재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이라 유리 너머로 감상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이 대작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오히려 복원 과정을 눈앞에서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야경》은 암스테르담 시민군을 이끄는 반닝 코크 대장과 그의 부하들을 묘사한 대형 군상화다. 극적인 명암 대비, 인물들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 그리고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구도는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해서 멀리서 바라보아도 시선을 압도하는 강렬한 임팩트를 자아냈다.

 

렘브란트 - 자화상
렘브란트 - 직물 길드 이사회

 

이외에도 렘브란트의 다양한 자화상과 《직물 길드 이사회(The Sampling Officials)》 같은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었다. 자화상에는 젊은 시절의 당당한 모습부터 말년의 고뇌와 깊이가 느껴지는 얼굴까지, 렘브란트가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성찰해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화려한 복장을 입고 자신을 시민군 기수로 묘사한 자화상에서는, 빛의 효과를 활용한 옷의 질감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직물 길드 이사회》는 렘브란트 말년의 원숙한 기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생동감이 넘쳤고, 마치 내가 회의실에 불쑥 들어서자 이사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엄숙하면서도 인간적인 분위기, 그리고 섬세한 빛의 묘사가 어우러져, 렘브란트가 왜 ‘인물화의 대가’로 불리는지를 다시금 실감할 수 있었다.

 

페르메이르 - 편지를 읽는 여인
페르메이르 - 우유를 따르는 여인

 

렘브란트의 작품들을 둘러본 후에는, 네덜란드 황금기를 대표하는 또 다른 거장,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그림들을 감상했다. 페르메이르의 현존 작품 수는 약 35점 정도로 매우 적기 때문에, 이곳에서 그의 그림을 한 자리에서 4~5점이나 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다.

페르메이르는 일상 속 고요한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데 탁월한 화가로, 빛의 처리, 공간 구성, 그리고 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단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지만, 이 그림은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어 이곳에서는 감상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에서는 《우유를 따르는 여인》과 《편지를 읽는 여인》 등, 그의 또 다른 대표작들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우유를 따르는 여인》은 창가에서 조용히 우유를 따르고 있는 하녀를 묘사한 작품으로, 일상적인 장면 속에 담긴 고요한 집중과 빛의 아름다움이 특히 인상 깊었다. 단순한 구도 안에서도 정제된 묘사력과 생동감이 느껴지는 점은, 페르메이르 특유의 회화적 언어를 잘 보여준다.

《편지를 읽는 여인》은 창가에 선 젊은 여성이 편지를 읽는 장면을 담고 있다. 여인의 섬세한 표정과 부드러운 자연광이 어우러져, 정적이면서도 내면의 이야기가 은근히 흐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말없이 서 있는 장면이지만, 그 안에 수많은 감정과 서사가 응축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렘브란트가 인간의 내면을 극적으로 끌어올려 표현했다면, 페르메이르는 그와는 대조적으로, 일상의 조용한 틈새 속에 깃든 감정과 빛의 흐름을 극도로 정제된 방식으로 담아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화가의 세계를 한 미술관에서 연이어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이 지닌 또 하나의 큰 매력이라고 느꼈다.

 

인형의 집

 

내가 가장 기대했던 두 하이라이트를 감상한 뒤에는, 네덜란드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들, 무기, 가구 등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인상적인 전시물은 많지 않았지만, 그중에서도 인형의 집(Doll’s House)은 크기와 정교함이 워낙 독특해서 유독 기억에 남았다.

이 인형의 집은 17세기 상류층 여성들이 수집하고 꾸미던 고급 장난감이자, 일종의 소형 인테리어 박물관 같은 역할을 하던 물건이다. 아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라기보다는, 성인 여성이 자신의 취향과 재력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예술적 수집품에 가까웠다. 실제 가정의 구조를 정밀하게 재현한 이 인형의 집은, 침실, 부엌, 응접실 등 각 방마다 실제 가구와 식기, 커튼, 심지어 미니어처 회화까지 갖추고 있어, 17세기 네덜란드 상류층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매우 흥미로운 전시물이었다.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투어는 오후 3시쯤 마무리되었다. 나는 곧바로 근처에 위치한 반 고흐 미술관(Van Gogh Museum)으로 향했다.

반 고흐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흐의 작품을 소장한 곳으로, 그의 예술 세계와 내면의 변화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자화상, 풍경화, 정물화, 편지 등을 포함해 200점이 넘는 작품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 구성은 연대기적으로 짜여 있어, 초기의 어두운 농민화 시절부터 아를 시기의 강렬한 색채 실험, 그리고 생레미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의 마지막 시기까지, 반 고흐의 예술적 진화를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미술관의 특징이다. 또한 그의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 그리고 그가 영향을 받은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한 인간이자 예술가로서의 고흐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참고로, 반 고흐 미술관은 워낙 인기가 많아 입장권은 반드시 사전에 예매하는 것이 좋다. 현장에서는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흐 - 감자 먹는 사람들

 

미술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은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이었다. 고흐의 초기 대표작인 이 그림은 농촌의 가난한 노동자 가족이 감자를 나누어 먹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어두운 색조와 투박한 인체 묘사는 고흐가 당시의 노동자들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 했던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단순한 장면 같지만, 그림 속에는 인간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과 경의가 담겨 있었다.

 

고흐 - 해바라기

 

이어 마주한 작품은 고흐의 상징과도 같은 《해바라기(Sunflowers)》였다. 노란 배경 위에 만개한 해바라기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색의 농도와 거칠고 역동적인 붓질이 인상적이었다. 이 그림은 고갱과의 공동 작업을 준비하며 그렸던 시기의 작품으로, 고흐가 가장 사랑했던 주제 중 하나였다고 한다.

 

고흐 - 아를의 방

 

《아를의 방(The Bedroom in Arles)》역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서 머물던 자신의 방을 그린 이 작품은 따뜻한 색감과 단순한 구도를 통해 편안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왜곡된 원근법과 거친 붓터치 속에는 고흐가 꿈꾸었던 안정된 삶에 대한 간절함이 녹아 있는 듯했다.

 

고흐 - 아이리스

 

《아이리스(Irises)》는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노란 배경과 푸른 꽃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보는 이를 사로잡았다. 반복되는 꽃의 리듬과 생동감 넘치는 붓질에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동시에 감정의 불안이 교차하는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고흐 -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주한 《꽃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는, 지금껏 이어져 온 감정의 파동을 잠시 멈추게 할 만큼 평온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나는 뭔지 모를 따뜻함에 이끌려 한참을 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이 작품은 고흐가 사랑하는 조카 빈센트의 탄생을 기념해 그린 그림으로, 밝고 투명한 하늘색 배경 위에 아몬드 나무 가지가 하얗게 꽃을 틔운 모습을 담고 있다. 일본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간결한 구도와 부드러운 색채의 조화는, 고흐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희망적이고 맑은 정서를 품고 있는 듯했다. 삶의 고통 속에서도 누군가를 위한 축복과 기쁨을 이토록 담담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오래도록 머물렀던 것 같다.

반 고흐 미술관은 정말 추천할 만한 곳이었다. 교과서나 책에서만 보던 고흐의 대표작들을 한 자리에서 직접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특별했지만,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작품들이 시간순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관람자는 한 화가의 생애를 따라 걷듯, 고흐의 예술적 변화와 내면의 고뇌, 그리고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고스란히 따라가 볼 수 있었다. 단순한 미술 감상이 아니라, 한 인간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여정 같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삼겹살 샌드위치

 

두 미술관을 연달아 관람하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 마침 출출하던 차에, 미술관 앞 광장에서 마켓 같은 것이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천천히 둘러보던 중 큼직한 삼겹살이 푸짐하게 들어간 샌드위치가 눈에 띄었고, 주저 없이 하나 사서 먹었다. 고기의 육즙과 바삭한 빵이 어우러져 기대보다 훨씬 맛있었다. 피로와 허기가 동시에 풀리는 기분이었다.

간단하지만 든든한 한 끼를 마친 나는, 본 일정인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마스트리히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짧은 암스테르담 일정이었지만,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 고흐까지 예술의 밀도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다. 단 하루였음에도 이토록 알차고 만족스러웠던 경험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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