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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 2022년 5월 31일
예술의 도시 파리에 걸맞게 다양한 예술을 즐긴 하루였다. 오전 일정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시작했다. 워낙 크고 다양한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라 오후 늦게까지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직 비수기여서인지 관람객이 많지 않아 인파에 밀리지 않고 여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오르세 미술관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인상주의와 탈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자주 접한 마네, 모네, 에드가 드가, 세잔, 반 고흐의 작품이 특히 많다. 서양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곳을 방문하면 "어? 이 작품 어디서 본 적 있는데..."라고 느낄 만큼 익숙한 걸작들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아는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몰랐던 예술가나 작품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미술관 방문의 묘미인 것 같다. 나는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라는 여성 화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오르세 미술관을 관람하며 그녀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배울 수 있었다. 베르트 모리조는 인상주의 그룹의 일원으로, 마네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던 동료 화가였다. 그녀는 마네의 작품에도 종종 모델로 등장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다. 아래 사진은 미술관을 둘러보다 내 눈에 띈 베르트 모리조의 'Butterfly Hunt'라는 작품이다. 그녀의 섬세한 붓 터치와 부드러운 색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인상주의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네와 에드가 드가 등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걸작들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오르세 미술관이 정말 즐거웠다. 지금까지 방문한 여러 유명 미술관들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인 것 같다.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철도역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곳이라 외관이 화려하고 내부도 독특한 매력을 자랑한다. 특히, 아래 사진처럼 시계탑 뒤에서 파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다. 이곳은 인상적인 사진을 남길 수 있어 관람객들이 많이 몰리는 인기 스팟이기도 하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모네의 '수련' 시리즈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네가 자신의 정원에 만든 연못을 소재로 삼아 빛과 색의 변화를 탐구한 결과물로, 현실적인 형태보다 색과 빛의 감각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 유명한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도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것으로, 론강 위에 반사된 별빛과 강변의 풍경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걸작이다. 고흐 특유의 강렬한 터치와 대담한 색감은 밤하늘의 별과 물 위의 반짝임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면서도, 뒤편 도시 조명의 따스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오르세 미술관에는 회화뿐만 아니라 뛰어난 조각 작품들도 많이 소장되어 있으며, 특히 로댕과 그의 제자였던 앙투안 부르델의 작품들이 유명하다. 로댕의 강렬하고 감정이 담긴 조각들과 함께 부르델의 역동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은 미술관 관람의 또 다른 묘미를 더해준다.
후에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사실주의 화가인 장프랑수아 밀레의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는 농민들의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통해 당시 사회의 현실을 진솔하고 따뜻하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 사진에 있는 '이삭 줍는 여인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들판에서 추수 후 남겨진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후 3시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저녁에 예정된 피아노 연주회를 기다리며 센강을 따라 산책을 했다. 이날 파리의 날씨는 정말 완벽했다. 맑은 하늘에 적당히 떠 있는 구름, 그리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산책의 즐거움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센강을 따라 걸으며 바라본 파리 시내의 풍경도 아름다워 더욱 기억에 남는다.
저녁에는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Grigory Sokolov)의 피아노 독주회에 다녀왔다. 소콜로프는 무대 공연에 집중하는 예술가로, 녹음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오직 라이브 공연을 통해서만 자신의 음악을 선보이는 독특한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그의 공연은 유럽에서만 열리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귀한 기회였다.
친구 덕분에 파리에서 열리는 독주회를 알게 되었고, 바로 예매했다. 클래식 음악 공연료가 유럽에서는 비교적 저렴한 편이라 가격은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았다. 친구는 더 비싼 1층 좌석을 잡았지만, 나는 1층 좌석이 이미 매진되어 2층 좌석을 예약했다.
공연장은 Théâtre des Champs-Élysées로, 우아한 디자인과 뛰어난 음향 시설로 유명하다. 이런 특별한 장소에서 소콜로프의 연주를 들을 수 있어 정말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연주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았다.
- Beethoven « Variations Eroica » opus 35
- Brahms Trois Intermezzi op. 117
- Schumann Kreisleriana Fantaisie op. 16
모두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은 아니었지만, 소콜로프 특유의 긴장감 넘치고 시리어스한 연주 덕분에 귀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연주의 깊이와 몰입감은 정말 엄청났지만,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중간에 살짝 졸 뻔한 위기가 있기도 했다.
모든 연주가 끝난 후, 앵콜곡까지 선사해 주셨고, 관객들은 계속해서 열정적인 박수를 보내며 그를 향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친구는 1층 좌석에서 건반을 두드리는 소콜로프의 손가락 움직임까지 볼 수 있었다며 자랑을 했는데,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연주회가 끝난 뒤에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연주회장 근처에 에펠탑이 있어, 조명이 켜진 에펠탑을 센강을 배경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름다운 야경까지 즐길 수 있어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