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 2023년 8월 5일
루트: 에페수스 - 쉬린제 마을 - 에페수스 고고학 박물관 - 아르테미스 신전
이 날의 주요 방문지는 에페수스와 쉬린제 마을이었다. 에페수스는 그늘이 없고 걷는 양이 많아 오전 관광이 추천되므로, 오전에 에페수스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셀축 오토가르에서 돌무쉬를 타면 에페수스 북문에 내려준다. (에페수스는 뮤지엄 패스 사용이 가능하다.) 북문에서 남쪽으로 쭉 걸어 내려가면 에페수스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에페수스는 기원전 9세기에 건립된 아테네의 식민 도시이다. 이후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해방되었으며, 대왕 사후에는 그의 휘하 장군이었던 리시마코스의 지배 아래 부흥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에페수스 출신이며, 기독교 역사에서도 사도 바울이 선교 활동을 한 곳으로 큰 의미를 지닌 장소이다 (사도행전). 반원형 극장과 아고라를 지나며 본 에페수스의 유적은 정말 근사했다. 히에로폴리스보다 규모도 크고 보존 상태도 더 좋은 것 같았다.
아고라를 빠져 나오면 그 유명한 켈수스 도서관을 볼 수 있다. 이 도서관은 2세기 초에 로마의 집정관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셀수스 폴레미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알렉산드리아, 페르가몬과 함께 고대 3대 도서관으로 유명하며, 당시에는 수천 권의 두루마리 책이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고트족의 침략으로 모든 책이 소실되었다고 전해진다.
계속 걷다 보면 테라스 하우스라는 부유층의 주택이 나온다. (요금 별도, 뮤지엄 패스 사용 가능.) 이곳에서는 당시 생활의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벽화와 정교한 모자이크 바닥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남문에 가까워지면 승리의 여신 니케 조각이 길에 방치되어 있다. 이 조각은 분명 책에서 봤던 것인데, 왜 이렇게 어중간하게 방치되어 있는지 의아했다. 니케 조각은 에페수스에서 발견된 중요한 유물 중 하나로,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 니케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녀는 날개를 펼친 채 한 손에 승리의 월계관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에페수스 일정을 마치고, 남문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다시 셀축 오토가르로 향했다. 여기서 돌무쉬를 타고 쉬린제 마을로 갈 수 있다. 쉬린제는 에페수스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이 아기자기한 마을에는 올리브유, 와인, 공예품 등 다양한 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길마다 자리하고 있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서 이곳에서 기념품을 조금 샀다.
쉬린제 관광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하루 일정을 마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호텔 바로 옆에 에페수스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도 넉넉하고 박물관 규모도 작아 보이기에 바로 방문하기로 했다. (뮤지엄 패스 이용 가능.) 이곳에는 에페수스의 주신이었던 아르테미스 여신의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아르테미스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으로, 그 조각상은 매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 서쪽으로 걸어가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 터가 나온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안티파트로스는 그의 시에서 7대 불가사의 중 아르테미스 신전을 최고로 칭송했는데, 그 위용은 사라지고 이제는 거대한 기둥 하나만이 남아 있다.
이 신전은 총 세 번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첫 번째 신전은 청동기 시대에 지어졌으나 홍수로 파괴되었고, 두 번째 신전은 기원전 550년에 건설되었으나,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인물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저지른 방화로 인해 파괴되었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323년에 세 번째 신전이 건설되었지만, 이후 고트족의 침입과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신전은 방치되고 잊혀져 갔다고 한다. 후에 신전의 일부가 아야 소피아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복원은 불가능할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