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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일: 2022년 6월 1일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이날은 오후에 바르셀로나로 이동해야 했기에 오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막상 루브르에 도착해 보니 줄이 너무 길어 과감히 포기하고 대신 로댕 미술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로댕 미술관(Musée Rodin)은 세계적인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하고 있다. 이 미술관은 로댕이 살았던 비롱 저택(Hôtel Biron)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로댕의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정원의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실제로 심각한 고민에 잠긴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런 커다란 조각상 외에도 로댕이 만든 작은 조각 작품이나 회화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작품들이 전시된 건물 역시 아름다워, 작품 감상과 함께 건물 자체를 구경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었다.
전시관을 나와 정원을 거닐다가 로댕의 '세 망령'(The Three Shades)을 보았다. 이 작품은 그의 대작 '지옥의 문' 상단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세 개의 동일한 남성 누드 형상이 서로 다른 각도로 배치되어 마치 한 인물이 세 개로 나뉜 것처럼 보이는 독창적인 조각이다. 이 인물들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지옥으로 들어가는 영혼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로댕의 대표작 '지옥의 문'(The Gates of Hell)' 도 볼 수 있었다. 단테의 서사시 신곡의 지옥편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작품은 6m 높이의 대규모 청동문으로, 200개 이상의 인물이 역동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로댕의 또 다른 대표작인 '생각하는 사람', '키스', '세 망령'도 이 작품의 일부로 처음 설계되었다고 한다. 끝없는 고통과 인간의 감정을 생생히 묘사한 이 작품은 로댕의 예술적 천재성과 상상력을 보여주는 것 같다.
또 다른 대표작인 '칼레의 시민들 (The Burghers of Calais) '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칼레의 시민들'은 백년전쟁 당시 칼레에서 벌어진 영웅적인 이야기를 기념하는 작품이다. 잉글랜드 군대의 포위 속에서 도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한 여섯 명의 시민들의 희생과 고뇌를 생생히 묘사한 작품이다. 로댕은 이들의 감정과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을 사용했으며, 각 인물의 표정과 자세를 통해 두려움, 결단, 그리고 고통이 그대로 드러난다.
미술관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조각상들의 제작 과정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로댕의 작품을 스케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다.
로댕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날씨는 초여름처럼 살짝 더운 편이었다. 시원한 봄이나 가을 같은 날씨였던 파리가 벌써 그리워졌다. 거리의 분위기도 확연히 달랐는데, 바르셀로나는 파리보다 훨씬 활기차고 휴양지의 느낌이 강했다.